2009/05/01 14:55
무가탈 하우스
당신을 살아가게끔 하는
내면의 불덩이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당신을 설래이게 하나요?
무엇이 당신의 인생을 통털어 '이것만은 하고가자' 하고 되내이게 되나요?
2009년 5월 1일. 근로자의 날.
오늘아침 눈을 뜨고 오전 11시가 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잠시 오랜만의 늦잠에 만족해하며
베계에 머리를 묻고 편안함을 느껴봅니다.
지난주에 있었던 두가지의 일이 저에게 어떤 큰 계기가 됨을 느낍니다.
안에서 불덩이가 올라오며.
침대가 후끈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너무나 가슴 벅차고, 슬픈 이야기를 나눠드릴까 합니다.
저는 이 일들이 여지껏의 제 삶에 어떤 신호가 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궝 방자잉~!
저는 이 분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우리의 '권반장님'
저하고 건설 프로젝트 2개를 해오시며,
벌써 5년째 제가 맡은 현장에서 현장의 직영일을 맡아서 해주시는 반장님이십니다.
저는 처음에 권반장님 고향이 북한인줄 알았습니다.
'니 아니,, 그것도 모르나?'
'니 춤은 좀 출줄 아나?'
'아니, 니 역사를 모르나?'
몇년전에 '웰컴투 동막골'의 강혜정 분이
'아니 니 미칬나~?'
하는 말을 듣고서야, 그것이 강원도 사투리라는 것을 알고 떼굴떼굴 굴렀습니다.
그때부터, 권반장님에 대한 제 애칭은.
'궝 방장잉~~'
그분은 소위 20년을 넘게 노가다판에서 인생을 하신 분이지만.
제가 보기에는 진정한 아티스트요, 학자요, 인생을 즐기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분의 컴퓨터에 대한 지식은 상상을 초월했고,
잠시 쉬는 시간에 반장님 창고에라도 들릴치라면,
msn 메신저로 친구들과 음성채팅을 하고 계셨습니다.
갖가지 망치, 끌, 잡도구가 있는 창고의 한편에는.
오래된 백과사전이 있었습니다.
항상 돋보기를 쓰고, 궁금한 것은 백과사전을 찾아보고 줄줄줄 유창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시간이 날때마다,
산과 들로 돌아다니시며, 사진을 찍어 웹상에 공유하는 사진 작가이셨고,
현장의 소소한 일,
가족들, 손자들을 HD 비디오로 찍어서 편집해서 역사를 기록하는 아티스트셨고,
지루박, 탱고, 왈츠..
'니 춤은 좀 추나?'
하시며 건설 현장의 슬래브 위에서 춤을 가르쳐 주시기도 하시던 춤박사이시기도 하셨습니다.
몇년전에는 같이 보던 캠코더 잡지에서.
PD용 모자를 공동구매 한다는 것을 알고,
기한이 지난 이벤트를 잡지사에 전화를 걸어 모자 2개를 같이 사서 썼습니다.
'니 공부좀 해라'
'니 춤을 모르나'
'어허 최대리는 진짜 멋쟁이야'
그분의 한마디 한마디는
사회 초년생이었던 제게는.
오히려 회사의 임원이나 부장, 과장들 보다도 멋지게 보였고.
인생이 이런것만은 아니구나, 내 삶의 즐거움은 어디에 있을까 막연하게나마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거 같습니다.
그분이 3일전,
느닷없이 제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제가 일이 바빠 최근 몇달은,
멀리서나마 뵈고, 손을 흔들어 주시면, 저도 크게 손을 흔들고 웃을 뿐이었습니다.
'최대리~ 나 가야겠다'
깜짝놀라 궝방장잉을 보니, 얼굴이 예전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몰라보게 수척해지시고, 그야말로 얼굴이 반쪽이셨습니다.
'오늘 병원에서 진단 결과가 나왔는데, 입원하라네..
입원하면 장기간이 될 거 같아서, 이제 그만 나와야겠어~
최대리를 특별히 좋아했잖아, 그래서 얘기하는거야'
그렇게 그분은 가셨습니다.
이틀간 제 머리속에는 '궝방장잉' - '권반장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맴돌고 있습니다.
그분은 진정한 선비요, 학자요, 아티스트이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이제 예순이 갓 넘으신 연세에..
그분의 삶의 여정에 정리를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행복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걸까요?
그분은 훨훨 자유로우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뼈대있는 권씨가문의 선비이셨고, 학식과 덕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그저 '권반장'
계약직 노무자로 평생을 반장으로만 사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회사에서 누구도 권반장님의 이런 가치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모른다기 보다는, 관심이 없는 것이지요.
그 분에 대한 촛점은 그저 잡일, 말잘듣고 적당히 해나갈 수 있는 그런 사람에 있었기에, 그럴것입니다..
우리가 꿈을 가진다는 것과
꿈을 실현하고, 삶의 향기에 녹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건강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풍요로운 가치를 함께하며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 질문이
'궝방장잉~' 부르는 소리와 함께 제 안에서 메아리쳐 올라옵니다.
우리는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하고 살아갈 권리와 의무가 있지 않을까요?
어제는 집에 새벽 1시가 넘어들어왔습니다.
제 자신을 살펴보니,
여기저기 핏자국이 묻어있고, 얼굴 한대를 맞아서 그런지 벌겋게 부어있습니다.
너무나 마음이 쓰리고 아파서 쉽게 잠이 오지 않습니다.
잠못드는 밤
밤하늘은 쏟아지고
그 밤하늘에 깊히 눌러앉아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희 회사에는 제가 존경하는 후배이자 동료가 있습니다.
진정한 휴머니스트요, 능력가요, 굳센 사나이입니다.
그가 밤을 세워서 일하고 회사에 헌신하는 이유는.
상사에 잘보이거나, 입신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일하기만 하는 것이,
너무나 부조리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그는 마치 담배가 싫어서, 산모 옆에서 열심히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일 유머러스하고.
상사들에게 인정받고, 동료들과 함께하는 모습이 제게는 신뢰와 존경의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어제는 그 친구가.
술을 먹고 길거리에서 옷을 모두 벗었습니다.
얼굴에는 눈물이 계속 흘렀고,
세상을 향한 주먹질에 코피와 피가 쏟아졌습니다.
세상을 향해서,
회사를 향해서.
상사를 향해서.
그는 욕을 내뱉었습니다.
'이 무능력한 놈들.. 니들이 알아?
니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
난 너무 억울해.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돼.
나 돌아갈래.
나 성공할래'
그는 몇일전 사표를 내고 떠나간 동료에 대한 연민과.
그를 떠나게 한 사회와 상사에 대해서.
그리고, 여지것 너무나 일을 열심히 해 온 자신.
그리고 그런 자신을 칭찬하고 이용해 먹은 상사와 회사에 대해서 울분을 토했습니다.
그의 울분은
그의 열정만큼이나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마신 술은, 그리고 이틀밤을 세운 그의 피곤은.
그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게 했습니다.
그가 발가벗고 날뛰는 모습은.
그가 언젠가 나에게 얘기해준.
고향 제주도에서 돼지 오줌통으로 공을 만들어 뛰어놀던 그 모습.
지극히 자연스럽고, 자유롭고, 분노를 표하는 멧돼지 같았습니다.
그 산사람을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말리지 마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다 필요없으니까 다 꺼져버리세요"
그 산멧돼지를 부여잡고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미안하다. 미안하다, 나를 용서해라, 내가 잘못했다. 집에 가자. 집에가자"
"내가 너를 안다. 나도 안다. 미안하다, 용서해라"
저는 그가 분노를 내려놓고.
그가 붙잡고 있는 세상을 내려놓길 진심으로 바랬습니다.
그는 세상을 왜곡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바라보고 선택한 세상은.
'빌어먹을 부조리의 좆같은 세상'이었습니다.
그런 세상에 대해서 good man이 할 수 있었던 것은,
헌신과 자기 희생, 자아 욕구의 희생, 자기다움의 희생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에게 희생을 요구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만든 세상이었습니다.
비록..
그가 만든 세상과 사람에 대해서 모든 최선을 다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가 스스로 만든 세상에 대한 울분일 뿐이었습니다.
영화 '박하사탕'이 생각납니다..
5.18 항쟁에 대한 그의 선택. 그것은 '나 돌아갈래'로 귀결되나요?
여러분의 박하사탕은 무엇입니까?
또 저의 박하사탕은 무엇일까요?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게 된, 그 소중한 '박하사탕'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은.
가능성의 장(field) 입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당신이 선택한 수많은 가능태 중의. 단 하나일 뿐 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인생을 잘 살았다, 못 살았다 말할 수 있을까요?
누가 자기 인생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제가 선택한 인생의 관점도.
여러분이 살아가고 있는 인생의 관점도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일 뿐입니다.
어떤 창으로 세상을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창을 선택하고 있는 것을 아느냐가 더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유난히도 밤 하늘의 초생달은 편하게도 누워있군요.
회식을 했던 음식점 아주머니는 우리를 위해 상가앞 환하게 켜놓았던 불을 껐습니다.
관객 돌아간 무대위에 쓸쓸히 조명하나 켜놓고 펼치는 인생 연극과도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오늘 아침 눈을 뜨면서, 점차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저를 점점 더 혼돈의 가장자리에 몰아대면서,
무엇이 명료해 지는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단지, 하나의 창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저는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관심과 사랑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자신을 알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발견하고 선택하는데 도움이 되는 코치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공감 디자이너, 최석민입니다.
내면의 불덩이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당신을 설래이게 하나요?
무엇이 당신의 인생을 통털어 '이것만은 하고가자' 하고 되내이게 되나요?
2009년 5월 1일. 근로자의 날.
오늘아침 눈을 뜨고 오전 11시가 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잠시 오랜만의 늦잠에 만족해하며
베계에 머리를 묻고 편안함을 느껴봅니다.
지난주에 있었던 두가지의 일이 저에게 어떤 큰 계기가 됨을 느낍니다.
안에서 불덩이가 올라오며.
침대가 후끈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너무나 가슴 벅차고, 슬픈 이야기를 나눠드릴까 합니다.
저는 이 일들이 여지껏의 제 삶에 어떤 신호가 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궝 방자잉~!
저는 이 분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우리의 '권반장님'
저하고 건설 프로젝트 2개를 해오시며,
벌써 5년째 제가 맡은 현장에서 현장의 직영일을 맡아서 해주시는 반장님이십니다.
저는 처음에 권반장님 고향이 북한인줄 알았습니다.
'니 아니,, 그것도 모르나?'
'니 춤은 좀 출줄 아나?'
'아니, 니 역사를 모르나?'
몇년전에 '웰컴투 동막골'의 강혜정 분이
'아니 니 미칬나~?'
하는 말을 듣고서야, 그것이 강원도 사투리라는 것을 알고 떼굴떼굴 굴렀습니다.
그때부터, 권반장님에 대한 제 애칭은.
'궝 방장잉~~'
그분은 소위 20년을 넘게 노가다판에서 인생을 하신 분이지만.
제가 보기에는 진정한 아티스트요, 학자요, 인생을 즐기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분의 컴퓨터에 대한 지식은 상상을 초월했고,
잠시 쉬는 시간에 반장님 창고에라도 들릴치라면,
msn 메신저로 친구들과 음성채팅을 하고 계셨습니다.
갖가지 망치, 끌, 잡도구가 있는 창고의 한편에는.
오래된 백과사전이 있었습니다.
항상 돋보기를 쓰고, 궁금한 것은 백과사전을 찾아보고 줄줄줄 유창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시간이 날때마다,
산과 들로 돌아다니시며, 사진을 찍어 웹상에 공유하는 사진 작가이셨고,
현장의 소소한 일,
가족들, 손자들을 HD 비디오로 찍어서 편집해서 역사를 기록하는 아티스트셨고,
지루박, 탱고, 왈츠..
'니 춤은 좀 추나?'
하시며 건설 현장의 슬래브 위에서 춤을 가르쳐 주시기도 하시던 춤박사이시기도 하셨습니다.
몇년전에는 같이 보던 캠코더 잡지에서.
PD용 모자를 공동구매 한다는 것을 알고,
기한이 지난 이벤트를 잡지사에 전화를 걸어 모자 2개를 같이 사서 썼습니다.
'니 공부좀 해라'
'니 춤을 모르나'
'어허 최대리는 진짜 멋쟁이야'
그분의 한마디 한마디는
사회 초년생이었던 제게는.
오히려 회사의 임원이나 부장, 과장들 보다도 멋지게 보였고.
인생이 이런것만은 아니구나, 내 삶의 즐거움은 어디에 있을까 막연하게나마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거 같습니다.
그분이 3일전,
느닷없이 제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제가 일이 바빠 최근 몇달은,
멀리서나마 뵈고, 손을 흔들어 주시면, 저도 크게 손을 흔들고 웃을 뿐이었습니다.
'최대리~ 나 가야겠다'
깜짝놀라 궝방장잉을 보니, 얼굴이 예전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몰라보게 수척해지시고, 그야말로 얼굴이 반쪽이셨습니다.
'오늘 병원에서 진단 결과가 나왔는데, 입원하라네..
입원하면 장기간이 될 거 같아서, 이제 그만 나와야겠어~
최대리를 특별히 좋아했잖아, 그래서 얘기하는거야'
그렇게 그분은 가셨습니다.
이틀간 제 머리속에는 '궝방장잉' - '권반장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맴돌고 있습니다.
그분은 진정한 선비요, 학자요, 아티스트이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이제 예순이 갓 넘으신 연세에..
그분의 삶의 여정에 정리를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행복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걸까요?
그분은 훨훨 자유로우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뼈대있는 권씨가문의 선비이셨고, 학식과 덕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그저 '권반장'
계약직 노무자로 평생을 반장으로만 사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회사에서 누구도 권반장님의 이런 가치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모른다기 보다는, 관심이 없는 것이지요.
그 분에 대한 촛점은 그저 잡일, 말잘듣고 적당히 해나갈 수 있는 그런 사람에 있었기에, 그럴것입니다..
우리가 꿈을 가진다는 것과
꿈을 실현하고, 삶의 향기에 녹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건강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풍요로운 가치를 함께하며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 질문이
'궝방장잉~' 부르는 소리와 함께 제 안에서 메아리쳐 올라옵니다.
우리는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하고 살아갈 권리와 의무가 있지 않을까요?
어제는 집에 새벽 1시가 넘어들어왔습니다.
제 자신을 살펴보니,
여기저기 핏자국이 묻어있고, 얼굴 한대를 맞아서 그런지 벌겋게 부어있습니다.
너무나 마음이 쓰리고 아파서 쉽게 잠이 오지 않습니다.
잠못드는 밤
밤하늘은 쏟아지고
그 밤하늘에 깊히 눌러앉아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희 회사에는 제가 존경하는 후배이자 동료가 있습니다.
진정한 휴머니스트요, 능력가요, 굳센 사나이입니다.
그가 밤을 세워서 일하고 회사에 헌신하는 이유는.
상사에 잘보이거나, 입신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일하기만 하는 것이,
너무나 부조리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그는 마치 담배가 싫어서, 산모 옆에서 열심히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일 유머러스하고.
상사들에게 인정받고, 동료들과 함께하는 모습이 제게는 신뢰와 존경의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어제는 그 친구가.
술을 먹고 길거리에서 옷을 모두 벗었습니다.
얼굴에는 눈물이 계속 흘렀고,
세상을 향한 주먹질에 코피와 피가 쏟아졌습니다.
세상을 향해서,
회사를 향해서.
상사를 향해서.
그는 욕을 내뱉었습니다.
'이 무능력한 놈들.. 니들이 알아?
니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
난 너무 억울해.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돼.
나 돌아갈래.
나 성공할래'
그는 몇일전 사표를 내고 떠나간 동료에 대한 연민과.
그를 떠나게 한 사회와 상사에 대해서.
그리고, 여지것 너무나 일을 열심히 해 온 자신.
그리고 그런 자신을 칭찬하고 이용해 먹은 상사와 회사에 대해서 울분을 토했습니다.
그의 울분은
그의 열정만큼이나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마신 술은, 그리고 이틀밤을 세운 그의 피곤은.
그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게 했습니다.
그가 발가벗고 날뛰는 모습은.
그가 언젠가 나에게 얘기해준.
고향 제주도에서 돼지 오줌통으로 공을 만들어 뛰어놀던 그 모습.
지극히 자연스럽고, 자유롭고, 분노를 표하는 멧돼지 같았습니다.
그 산사람을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말리지 마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다 필요없으니까 다 꺼져버리세요"
그 산멧돼지를 부여잡고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미안하다. 미안하다, 나를 용서해라, 내가 잘못했다. 집에 가자. 집에가자"
"내가 너를 안다. 나도 안다. 미안하다, 용서해라"
저는 그가 분노를 내려놓고.
그가 붙잡고 있는 세상을 내려놓길 진심으로 바랬습니다.
그는 세상을 왜곡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바라보고 선택한 세상은.
'빌어먹을 부조리의 좆같은 세상'이었습니다.
그런 세상에 대해서 good man이 할 수 있었던 것은,
헌신과 자기 희생, 자아 욕구의 희생, 자기다움의 희생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에게 희생을 요구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만든 세상이었습니다.
비록..
그가 만든 세상과 사람에 대해서 모든 최선을 다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가 스스로 만든 세상에 대한 울분일 뿐이었습니다.
영화 '박하사탕'이 생각납니다..
5.18 항쟁에 대한 그의 선택. 그것은 '나 돌아갈래'로 귀결되나요?
여러분의 박하사탕은 무엇입니까?
또 저의 박하사탕은 무엇일까요?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게 된, 그 소중한 '박하사탕'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은.
가능성의 장(field) 입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당신이 선택한 수많은 가능태 중의. 단 하나일 뿐 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인생을 잘 살았다, 못 살았다 말할 수 있을까요?
누가 자기 인생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제가 선택한 인생의 관점도.
여러분이 살아가고 있는 인생의 관점도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일 뿐입니다.
어떤 창으로 세상을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창을 선택하고 있는 것을 아느냐가 더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유난히도 밤 하늘의 초생달은 편하게도 누워있군요.
회식을 했던 음식점 아주머니는 우리를 위해 상가앞 환하게 켜놓았던 불을 껐습니다.
관객 돌아간 무대위에 쓸쓸히 조명하나 켜놓고 펼치는 인생 연극과도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오늘 아침 눈을 뜨면서, 점차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저를 점점 더 혼돈의 가장자리에 몰아대면서,
무엇이 명료해 지는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단지, 하나의 창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저는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관심과 사랑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자신을 알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발견하고 선택하는데 도움이 되는 코치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공감 디자이너, 최석민입니다.